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티브 맥마나만 (문단 편집) === [[리버풀 FC]] === [[파일:ad_117202257.jpg]] 단짝 [[로비 파울러]]와 함께. '''[[리버풀 FC]]의 [[로컬 보이]]'''로 다른 많은 리버풀의 전설들처럼 어린 시절 [[에버튼 FC]]의 팬이었던 맥마나만은 에버튼으로부터 1년간의 스쿨보이 계약을 제의받았지만, 리버풀에게 스쿨보이 계약 + 2년간의 연습생 계약을 제시받은 아버지(역시 에버튼 팬)가 리버풀의 조건을 선택하면서 리버풀 유스로 입단하게 된다. 1990년도에 데뷔한 맥마나만은 1992/93 시즌부터 팀의 주전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. 1993/1994 시즌 그는 팀에 새로 부임한 로이 에번스의 주문 아래 윙어에서 플레이메이커로 포지션을 변경하였고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다. 그는 1994/95 시즌 칼링컵 결승에 올라 홀로 2골을 기록하여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. 이후에도 그는 리버풀에서 맹활약을 펼쳤고, 리버풀의 새로운 축구를 선도하는 일명 '스파이스 보이즈'[* 당시 영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국민 걸그룹이던 [[스파이스 걸스]](데이비드 베컴의 아내 빅토리아 베컴이 소속되어 있었다)에서 따온 이름으로, 그 정도로 인기가 많았었다]의 리더로 간주되며 팀의 간판 스타가 된다. [youtube(=gJ3OO9k2QCc)] 그의 리버풀 시절 원더골 리버풀 시절의 스티브 맥마나만은 당시 잉글랜드의 다른 미드필더와는 달리 개인기가 뛰어난, 오히려 스페인 선수에 가까운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했었다. 리버풀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맹활약한 [[아담 랄라나]]가 처음 [[사우스햄튼]] 주장으로 활약을 펼치며 주목을 받게 되었을 때, 스티브 맥마나만의 재림이다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스타일이 비슷하다. 이후 랄라나가 리버풀로 이적해 오게 되면서 더욱 신기한 인연이 되었다 (심지어 랄라나 또한 맥마나만처럼 어렸을 적 에버튼의 팬이었다는 말도 있다)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